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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 900 :
터보 시대를 연 마지막 순혈 사브

이재욱 에디터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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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의 역사 속 수많은 명차들 중에서도 900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스웨덴의 자동차 회사 사브(Saab Automobile AB)는 자동차의 역사 속에서 사라진 수많은 회사들 중에서도 유독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 파산한 까닭도 있지만,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선진적인 설계를 도입해 온 개성 넘치는 브랜드가 모기업의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공중분해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진 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항공 분야에 뿌리를 둔 만큼, 사브의 자동차는 기성 자동차들과는 설계도, 스타일도 전혀 달랐습니다. 작고 다부진 차체에 삐죽 튀어나온 노즈, 옛 전투기 콕핏처럼 한껏 세워진 윈드실드, 완만하게 꺾여 내려가는 패스트백 스타일 따위의 디자인 요소는 물론이고, 탁월한 안전성이나 독특한 파워트레인 설계에 있어서도 사브 만의 색을 고집스럽게 지켜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개성이 독이 돼 경영난을 불러왔다는 평가도 있지만, 혁신적인 엔지니어링과 차별화된 디자인, 특유의 주행 감각 때문에 아직도 "자동차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사브를 타 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900은 터보 승용차 시대를 연 개척자이자, 최후의 순수 혈통 사브입니다.


경영이 어려워진 뒤 출시된 사브의 신모델들은 피아트나 후일 모기업이 된 GM의 플랫폼을 공유합니다. 브랜드의 현대화에 기여한 바는 크지만, 차체부터 엔진까지 철저히 독자적으로 설계한 차가 정통파 팬들에게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사브 전성기의 황혼을 장식한 마지막 순혈 사브, 900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안전을 위해 조기 등판한 신차


이름의 유래처럼, 사브는 원래 항공 기술로 자동차를 만들며 탄생한 회사입니다.


사브(SAAB)는 이름부터가 '스웨덴 항공기 유한회사(Svenska Aeroplan AB)'의 약자로, 원래 전투기를 만들던 회사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남아 도는 인력과 생산 능력으로 자동차를 만들며 그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래더 프레임에 캐빈을 얹는 바디 온 프레임 방식이 보편적이었던 당시 자동차 업계에서, 사브는 전투기처럼 모노코크 바디에 유선형 디자인을 입혀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사브는 전투기의 콕핏을 닮은 디자인에 일찌감치 전륜구동 설계를 받아들여 넉넉한 공간과 안정적인 주행 성능까지 갖췄고,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특유의 다부진 디자인과 주행 성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받게 됩니다.


99는 사브의 외연을 넓힌 모델이었지만, 강화된 충돌 안전 기준을 충족시키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당시 사브의 라인업은 1960년부터 만들어 온 소형차 96, 스포츠 쿠페인 97(쏘네트), 1969년 데뷔한 중형 세단 99 등 세 종류에 불과했는데요. 99는 사브의 중형차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끈 모델이었지만, 1970년대 들어 충돌 안전성이 자동차 업계의 중요한 어젠다로 부상하면서 난처한 입장이 됐습니다. 99의 설계로는 갑작스럽게 높아진 안전 테스트의 벽을 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특히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이 안전 규정을 법제화하면서 미국에 차를 팔기 위해서는 안전성을 높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브의 차기 중형차 프로젝트 'X36'은 99에 기반을 두되 신차에 준하는 개선이 이뤄졌습니다.


이에 사브는 99가 출시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70년대 초, 일찌감치 차기 중형 세단 프로젝트인 'X36'을 시작합니다. X36의 목표는 '미래의 사브를 만드는 것'. 99의 차체를 바탕으로 하되 강화된 안전 법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를 변경하고, 다가오는 80년대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첨단 사양을 대거 탑재하기로 합니다.


99의 기본 구조를 따랐지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길게 튀어나온 전면부였습니다. 비교적 안정적인 비례감의 99와는 달리 후드가 매우 길게 늘어나고, 자연히 프론트 오버행도 길어졌는데요. 이처럼 부조화스러운 비례는 정면 충돌 시의 크럼플 존(crumple zone) 확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범퍼 끝단과 운전석 사이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더 가혹한 충돌 상황에도 탑승자를 보호하겠다는 목적이었죠.


골격은 대동소이하지만 서스펜션을 비롯한 많은 변화가 이뤄졌습니다.


골격은 대동소이하지만 약 10년 만에 출시되는 후계작인 만큼 업그레이드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서스펜션은 앞 더블 위시본, 뒤 빔 액슬 방식이 채택됐는데요. 앞 서스펜션은 핸들링과 로드홀딩을 개선했고, 리어 액슬 빔에는 파나르 로드와 와츠 링키지가 추가돼 급격한 코너링 시의 안정성을 강화했습니다.


미래 사브의 얼굴이 될 날렵하고 공격적인, 동시에 세련된 디자인은 사브의 치프 디자이너였던 비요른 엔벌(Björn Envall)이 담당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99의 후속 모델은 오일 쇼크의 한복판이었던 1978년 출시 초읽기에 들어갑니다.



터보 대중화의 선구자


1978년, 사브 900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1978년 5월, 사브의 새로운 중형 세단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전까지 사브의 차명은 항상 '9'로 시작하는 두 자리 숫자를 사용했는데, 신모델은 이름마저 '900'으로 바꿨습니다. 선대 모델인 95나 99보다 확실히 한 급 위의 차라는 의미를 담으면서, 동시에 브랜드의 차명 체계를 개편하기 위함이었죠.


기본 설계는 99의 것을 활용했지만, 상술한 대로 하체 설계를 대폭 개선하고 휠베이스를 늘려 주행 성능이 크게 향상됐습니다. 또 길어진 휠베이스 만큼 실내 공간에도 넉넉해졌죠. 바디 타입 또한 3도어 패스트백만 있었던 99와 달리 3도어와 5도어가 마련됐고, 1980년에는 4도어 세단도 추가됩니다.


900에는 세계 최초의 통합 계기반 클러스터가 탑재됐습니다.


인테리어와 편의사양 개선도 이뤄졌습니다. 세계 최초로 회전계(타코미터), 속도계, 연료계와 수온계 및 각종 경고등이 통합된 통합형 계기반이 채택돼 시인성과 생산성을 높였으며, 구식 수평형 대시보드였던 99와 달리 900의 대시보드는 운전자를 둘러싼 전투기 조종석 같은 형태로 탈바꿈했습니다. 또 세계 최초로 실내 공기를 여과하는 차량용 캐빈 필터(에어컨 필터)가 장착됩니다. 


900 터보의 엔진. 직렬 4기통 엔진을 45도 기울여 세로배치한 점이 독특합니다.


스타일과 편의성의 향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목을 끄는 건 파워트레인이었습니다. 900은 사브 최초로 터보 엔진을 폭넓게 채용한 모델이었습니다. 사브 최초의 터보 차량은 직전 모델인 99의 최후기형이었지만, 사브의 '터보 선구자' 이미지를 만든 건 900이었습니다.


초기형 900의 엔진 라인업은 모두 2.0L 직렬4기통 B-엔진이 탑재됐는데요. 연료 분사 방식에 따라 싱글 카뷰레터, 트윈 카뷰레터, 제트로닉 기계식 인젝션, 그리고 제트로닉 터보 등 4종류로 나뉘었습니다. 최상위 모델인 900 터보는 145마력을 발휘했는데, 배기량에 비하면 아주 강력한 성능이었습니다.


사브는 항공기에 사용되던 터보 기술을 접목해 효율 개선과 배출가스 저감을 동시에 노렸습니다.


사브가 다른 제조사보다 터보 엔진을 빨리 도입한 이유는 여러가지인데요. 표면적으로는 "항공기 기술을 자동차에 접목시킨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면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우선 오일 쇼크 이후 유가가 치솟으면서 비교적 작은 배기량으로 강력한 출력을 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대등한 성능의 6기통 엔진보다 연비가 좋은 건 물론이고, 1970년대 강화된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도 유리했죠.


내부적으로는 당시 사브에게 6기통 엔진이 없었던 데다, 설령 있다 해도 비좁은 900의 엔진룸에 욱여넣기도 어려웠습니다. 더구나 독특한 세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을 지닌 900으로선 6기통 엔진 탑재가 불가능에 가까웠고, 이런 상황에서 고출력을 얻는 방법은 터보 엔진 뿐이었습니다.



사브가 터보 승용차를 처음 만든 건 아니지만, 터보의 대중화에 사브가 기여한 바는 매우 큽니다.


물론 사브가 터보 엔진을 처음 사용한 건 아니었습니다. 가솔린 터보 엔진은 이미 1960년대에 상용화됐고, BMW 2002 터보(1973년), 포르쉐 911 터보(1974년) 등의 터보 스포츠카가 900보다 먼저 출시된 바 있었죠. 하지만 고성능 스포츠카가 아닌, 대중적인 모델에 효율과 성능을 위해 터보 엔진을 폭넓게 적용하고, 터보 엔진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선진 기술을 적극 반영한 것은 900이 처음이었습니다.


후기형 900 터보에는 냉각 효율이 개선된 터보차저와 APC가 탑재돼 터보 엔진의 신뢰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900의 터보차저는 유냉 및 수냉 성능을 강화해(후기형) 내구성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터보 엔진의 치명적인 고장을 유발하는 노킹을 억제하기 위해 오토매틱 퍼포먼스 컨트롤(APC) 기능이 탑재됐습니다. APC는 노킹 센서와 연동해 옥탄가가 낮은 연료가 주유되면 부스트 압력을 낮춰 노킹을 억제하고 엔진을 보호했습니다. 덕분에 900 터보는 당시로선 낯선 터보 엔진을 탑재하고도 까다로운 관리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후기형에서는 최고출력이 175마력으로 향상된 900 터보 S 모델이 추가됐고, 출력은 소폭 올리되 중저속 토크를 향상시킨 145마력의 저압 터보(low pressure turbo, LPT) 사양 또한 최초로 도입됩니다. 이후 사브는 파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터보 엔진을 적용하는 회사가 됐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자동차에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이 탑재돼 대중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처럼 사브 900의 역할이 컸습니다.



스웨덴 고집이 빚어낸 도로 위의 전투기


900은 출시되자마자 큰 호평을 받으며 날개돋친듯 팔렸습니다.


사브 900은 출시되자마자 호평 받으며 팔려 나갔습니다. 다소 고루했던 이전의 사브 모델들과는 달리 세련되면서 개성 있는 디자인이 이목을 끌었고, 당대 양산차 중 가장 안전한 차체 설계와 경쾌한 터보 엔진의 조합 또한 매력적이었습니다.


일상 주행에서는 다부지고 묵직한 승용차였지만, 필요할 때는 언제든 쏜살처럼 달려나갈 수 있는 파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특히 유럽식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면서 퍼포먼스와 안전성 등을 까다롭게 따지던 의사, 변호사 등 미국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900을 선호했고, 사브가 '전문직 종사자들이 선호하는 스웨덴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확립한 것도 이때쯤의 일입니다.


미국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1980년에는 세단 바디도 추가됩니다.


미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현지 딜러들은 유럽 취향의 패스트백 외에 4도어 세단과 컨버터블 바디의 출시를 요구했고, 이에 따라 1980년과 1986년에 각각 세단과 컨버터블이 추가됩니다. 보다 실용적인 왜건의 출시도 검토됐지만, 최종적으로는 출시되지 않고 코치빌더를 통해서만 소량 제작됐습니다.


1986년 출시된 900 컨버터블은 4만 8,000여 대만 생산돼 지금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1987년에는 전면부 디자인을 수정하고 사양과 성능을 강화한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출시됩니다. 99와 비슷한 헤드램프의 면적을 넓히고 비스듬하게 눕혀 공기역학 성능을 개선했고, 범퍼는 차체와 일체감을 주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또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 후륜 파킹 브레이크, 삼원촉매 등이 추가되고 터보차저의 내구성을 강화하는 업그레이드가 이뤄집니다.


900(왼쪽)은 사브 자동차의 최전성기를 이끈 모델입니다. 사진은 전성기의 900과 9000, 그리고 사브 항공기.


900은 사브 역사 상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특별 에디션이 출시됐고, 심지어 모터스포츠와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사브였음에도 영국에서 900 터보 원메이크 레이스 시리즈가 개최될 정도였죠. 900의 대성공은 사브가 대형 세단인 9000을 출시하며 라인업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고, 이후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진 브랜드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열흘 붉은 꽃이 없는 법'이라는 말처럼,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900의 인기도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밀레니엄을 앞둔 시점에 이르러 경쟁사에서는 더욱 진보한 신차가 쏟아져 나왔고, 이미 출시된 지 10년이 넘은 900은 점차 도태되고 있었습니다.


오펠 플랫폼 기반의 2세대 900. 고유의 스타일을 계승했지만, 1세대 만큼의 호평을 받지는 못합니다.


이 시기는 회사 입장에서도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20년 간 이어진 사브-스카니아 그룹 체제가 끝나고, 1989년 GM이 사브의 지분 50%를 사들이며 순수혈통 사브의 시대도 종언을 맞이합니다.


900은 1992년 ABS 등 최신 사양이 추가된 파이널 버전을 끝으로 1993년 3월 단종됩니다. 단종 시점까지 4만 8,888대의 컨버터블을 포함해 총 90만 8,817대의 900이 생산됐고, 오펠 벡트라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된 2세대 900이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물론 900의 성공에는 그늘도 있었습니다. 900 덕에 탄생한 열성적인 사브 팬덤은 GM의 손길이 닿은 신차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이후 사브는 파산 전까지 900만큼 사랑 받는 모델을 다시는 선보이지 못합니다. 너무나도 사랑 받은 나머지 사브의 몰락에 기여한 셈이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사브는 사라졌지만, 900은 오늘날까지도 사브의 아이콘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900이 혁신적이고, 진보적이며, 매력적인 명차였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스웨덴 엔지니어들이 고집스럽게 빚어낸 최후의 순혈 사브는 폭발적인 성능을 지닌 도로 위의 전투기로 칭송 받았고, 군소 제조사였던 사브를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키워낸 일등공신이었습니다. 비록 사브의 푸른 뱃지가 새겨진 역사의 페이지는 넘어갔지만, 900은 오늘날까지도 사브의 아이콘이 되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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